고난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

고난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
2025-08-03 09:33:26
관리자
조회수   9

크리스천들에게 있어서 고통의 문제는 신정론이라고 해서 늘 대답하기 곤란한 문제로 치부되곤 합니다.
하나님이 선하시고 전능하신데 왜 우리의 고통을 해결해 주시지 않는가?
만약 전지전능하신데 해결해 주지 않으시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선하지 않은 것이고,
만약 선한 것이 틀림없다면 그분이 전지 전능하지 않으시기 때문일 것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것은 우리 입장에서 이기적으로 생각할 때 나오는 결론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입장에서 생각하면 얼마든지 다른 각도의 설명이 보입니다.
우선 하나님은 스스로 고통을 피하지 않으시는 분이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고통의 시작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분이 가장 먼저 고통 받으셨고, 가장 큰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창조하셨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자녀가 부부간의 사랑의 부산물이듯이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 사이의 사랑의 부산물입니다.
부부간의 사랑은 깊어지면 어리론가 분출이 되어 부산물을 내는 법이고, 그렇게 사랑은 깊어지면 그 사랑의 울타리 안에 우리의 사랑을 나눌 누군가를 더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법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세 분의 하나님이 완벽한 사랑은 어디론가 분출이 되고, 그 부산물로 우리가 생겨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서 창조하신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아름다운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이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정성을 다해 방을 예쁘게 꾸미듯이 말이지요.
창세기 1장을 읽어보면 하나님이 창조에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창조를 인간이 망가뜨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고통은 그때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는 순간, 가인이 아벨을 죽이던 순간, 그리고 온통 죄악으로 물든 세상을 홍수로 뒤엎던 순간 하나님은 말없이 우셨습니다.
'무자식이 상팔자'인데 하나님은 굳이 우리를 창조하셔서 고통 속으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창조의 전지전능과 사랑의 선하심으로 가지고 고통을 만들고 계시고 고통을 피하지 않고 계시는 것이지요.
그 중에 가장 큰 고통은 아들을 죽게 한 고통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포기하고 인간이 되어서 인간의 몸을 통해 태어나고, 약한 인간으로 살아가고, 그러다 결국은 하찮은 인간들에게 모진 고문을 당하고 발가벗기어져서 나무에 못이 박혀서 죽어가는 그 수모를 당할 때, 그것을 보는 성부 하나님의 마음이 어땠을까? 그 고통은 말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에게 그 모든 고통을 드린 것이 누구였는가? 다름없는 나 자신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께 못되게 굴었는지, 하나님을 조롱하고 그 분의 교회를 조롱하고 그 분의 복음을 조롱했던 것이 우리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고통을 없대 주시지 않느냐가 아니고 하나님과 그 고통을 기꺼이 함께 해야 할 것입니다.
엄마를 사랑하는 아들은 아무리 좋은 학교를 다닌다 하더라도 학교가 끝나면 달려와서 시장에서 좌판장사를 하고 있는 엄마 옆에 와서 앉아서 장사를 거들듯이 말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하나님을 사랑했던 사람은 언제나 그 고통을 함께 했습니다.
이사야가 그랬고, 예레미야가 그랬고, 사도바울이 그랬고,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왜 그런 고통이 필요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기까지 채워져야 할 의인의 고난의 분량이 있다는 것입니다.(골1:24)
즉, 고통을 당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통은 피하고 싶은 어떤 것이 아니게 됩니다.

그런 주님을 위한 고통에는 몇가지 유익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우리는 고통을 당할 때 그 분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됩니다.
언젠가 개인적으로 너무너무 고통을 받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하루 종일 펑펑 울었던 것 같습니다.
울음은 그 다음날까지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잊을만 하면 연신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 날이 수난절 예배가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설교 준비를 하고 올라갔습니다.
그날 십자가를 설교하는데 늘 수난절 설교를 하면서도 그 전에는 그날처럼 알지 못했습니다.
그날은 십자가의 고통이 저에게 깊이 다가왔습니다.
내가 아파보니까 비로서 하나님의 아픔이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예배 끝에 헌신을 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고난이 필요하다면 제가 그 고난을 당하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기꺼이 그리하겠습니다.' 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성찬식을 마치고 일어났는데 모든 고통이 깨끗하게 사라져 있었습니다. 신기한 체험이었습니다.

두뻔째 고통의 유익은 그것이 우리의 영혼을 씻어주어 순수하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지난 두주간 피붙이가 고통을 당하는 것을 지켜보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동안 기도 가운데 모든 회개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눈물은 끊임없이 흘렀고, 나의 숨겨진 모든 면에 대한 성찰과 못 다한 감사와 미루어진 회개가 나왔습니다.
그날 이후 기도의 자리로 돌아올 때 마다 늘 그랬습니다.

그리고 나니 내 영혼이 이토록 맑았던 적이 언제였나 싶은 생각이 얼핏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내가 주님 앞에 순수하게 서기를 바라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고통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계신지 고민하게 만드는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하는 특별한 선물임은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수관 목사)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첨부 파일
244 "꾸준함이 능력입니다" 관리자 2025-08-10 4
243 고난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 관리자 2025-08-03 9
242 가정교회는 잘 될 수밖에 없습니다 관리자 2025-07-27 13
241 영광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우리가 숙지하고 있어야 할 내용 관리자 2025-07-20 13
240 지난 주간 872차 평세를 섬기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관리자 2025-07-13 14
239 목숨을 걸어야 됩니다 관리자 2025-07-06 17
238 제872차 평신도 세미나 관리자 2025-06-29 18
237 『영적 성장을 보여주는 신호(Indicator)』 관리자 2025-06-22 23
236 "작심삼일(作心三日)을 해결하려면" 관리자 2025-06-15 28
235 "우리의 믿음은, 기대치입니다." 관리자 2025-06-08 24
234 "자연스런 분위기" 관리자 2025-06-01 28
233 "가장 힘겹고 어려운 싸움?" 관리자 2025-05-25 39
232 "왜 꼭 세례를 받아야 하나요?" 관리자 2025-05-18 34
231 설립 32주년 기념 주일 관리자 2025-05-11 47
230 "신앙인으로 존경스러운 부모 모습 보이기" 관리자 2025-05-04 47
1 2 3 4 5 6 7 8 9 10 ... 17